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고속도로, 막내 처남, 아내의 건강, 발동기

by 매운 레몬 2023. 3. 21.
반응형

경부선 고속도로 1970년 7월 7일 대구에서 개통식

 1960년 2월 1일에 착공, 2년 5개월 만에 완공, 총길이 428km(1,070리), 총 투자액 429억 원, 세계적으론 10위, 동양에선 일본 다음으로 2위, 작년에 완공되 일본 고속 도로는 1킬로미터당 7억원 우리나라는 1킬로미터당 1억원씩 소요 됐다. 일본 고속 도로보다 100킬로미터 길다. 비상 전투 비행장이 4곳에 있고 이외 많은 시설이 있다. 공사 중 희생자는 77명으로 대전에 위령비가 세워졌다. 산업 중흥의 길은 빠른 물류 수송로가 있어야 한다. 이 일에 왜 그리도 반대가 많았을까? 반대도 많았으나 반대한 그분들은 더 많이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내 중심으로 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국가의 지도자들은 미래를 바르게 내다보면 국가는 발전하고 성장하고 국민이 행복하게 살게 될 것이다. 조직이나 단체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막내 처남 정순오 1970년 5월 9일

 제주도에서 전보가 왔다. 갈우 동백골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던 때다. '정선오 사망 급래' 전보였다. 선오라는 이름은 없는데 라고 하면서 제주에 선례 또는 순오라고 생각하고 나는 일이 많아 아내만 보내기로 했다. 전화로 배편을 알아보니 호물선 등 4편이 있고 그중에 오후 6시에 화물선 화양호가 있다고 했다. 아내는 슬픔에 잠겨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어린 둘째 아들만 등에 업고 황산면 옥동 선착장에서 진도 벽파진으로 건너가 제주연락선을 타고 제주에 가게 되었다.

 아내는 제주에 가서 보니 처남 강운과 수호, 그리고 처제 선례가 모래 작업을 해왔는데 사업주와의 오해로 밤 11시에 자해한 것을 발견하고 모슬포에서 서귀포까지 가는데 차가 고장이 나서 지체되어 도착하고 보니 회복을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정에는 부모님이 안계시고 가정이 분산되어 어려운 가운데서 발생한 것이었다. 아내는 제주에 갔다온 후 충격이 심하여 그때의 슬픔으로 몸이 몹시 약화 되었다.

 

아내의 건강 염려 1972년 1월

 1970년 5월 11일 제주도에서 동생의 가슴 아픈 일을 보고 와서 마음이 슬픔에서 벗어나 새로운 용기를 가지고 살었어야 하는데 이를 벗어나지 못한 것을 나도 이를 감지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 불찰이었다. 1972년 5월 5일 막내딸을 출산하고 나서 아내의 시력이 갑자기 악화되어 목포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으나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소간도 먹어보았으나 즐겨 들지를 않았다. 어린대 딸도 성장하면서 시력이 약한 것을 알게 되었다.

 (후기)2007년 3월경 광주에서 생활하는 중 수두증을 발견하고 계림동 광명당에서 진맥을 하고 나서 원장이 하신 말씀이 40여년 전에 생긴 한으로 이렇게 되었다고 했다. 옆에 있던 큰딸이 그때 일을 내게 말했다. 약 1년간을 밥먹을 때 마다 힘들어 했다라고 했다.

 그래서 기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이때 부락의 지붕 개량(초가를 슬레이트로)과 세면 부록 찍기, 담쌓기, 미장 등을 하기에 나날을 보냈다. 나의 무관심으로 이렇게 된 것 같았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항상 순탄하지 않고 기쁨과 괴로움과 고통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가고 있다. 이럴수록 자신을 시험에 들지 않게 믿음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해 본다.

 

발동기 인수 1972년

 당당메에서 살면서 아랫집이 이 씨 형이 부락 발동기로 타작 작업을 할 때 함께 했던 경험이 있어 부락 정미소를 인수받으라는 권유를 받아 광주로 이사 할 때까지(1978년 11월) 운영하였다.

 보리타작, 가을 벼 탈곡 등, 집에서는 약간의 정미, 처음에는 인수 받은 원동기 5마력으로는 힘이 부족하여 고평리 이우식 4촌 사위에게서 경운기 8마력을 구입(일제). 작업 중 이 기계도 엔진이 힘이 부족하여 경쟁력이 안되어 경운기 대동회사 10마력 경운기를 광주에서 구입하여 사용하게 되니 힘이 넉넉하여 만족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기계를 다루다 보니 기계에 대해서는 처음이라 기술을 터득까지 많은 애로가 있었으나 어려움을 이기고 운영했었다. 경운기를 운행하다 보니 위험한 때도 있었다. 운행하다가 운전 조정미숙으로 경사길에서 급 브레이크를 당기므로 핸들이 옆구리에 부딛혀 좀 부상을 입기도 하였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경상이었다. 나는 체력이 약하여 경운기 힘에 끌려가기도 하여 위험한 때도 있었다. 운영하는 요령을 점점 터득하게 되어 큰 어려움은 없이 운영해 왔다. 보리타작이나 벼 타작 등을 하면서 발동기로 할 때는 고장이 나면 밤에도 일해야 하니 참으로 힘들었다. 부락민들의 이해와 협력을 매우 고맙게 여긴다. 너무도 많이 협조해 주셔서 부락 주민 그분들의 정을 생각하면서 감사할 뿐이다. 지켜주시는 하나님 감사를 드린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