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김복술, 김복래, 김창동, 김창선

by 매운 레몬 2023. 3. 15.
반응형

김복술 1919년 10월 20일생, 2009년 4월 4일 오후 4시 향년 90세, 4월5일 오후 2시 수원시 연화장에서 장례 및 연화장 납골당 안치

 형님은 맏형님으로서 성장하시면서 가정형편이 어려워 말수레를 가지고 자수성가 하신분이다. 자녀들은 지금 서울 근방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우리 가정을 매우 아끼고 사랑해 주셨던 큰 형님이시다. 고전리에서 내가 군에 있을 때 아내와 딸 둘을 갈우리 당당뫼에 작은 집을 구해 이사를 시켰다. 갈우리에서 생활할 때에 볏짚이나 새끼 꼬기를 하는 집과 새끼 꼬는 기계를 사용하게 하고, 토지를 기경하는 소를 아무 때나 사용하게 하며 우리에게 너무도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다.

 나이가 연로해지면서 수원 막둥이 아들 철호 집에서 자녀들의 효심을 바으면서 지내시다가 정신이 흐려져 힘들게 지내셨다고 들었다.

 자녀들도 고인을 편하게 대 드리려고 수고들을 많이 했지만 생명의 수한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 파란 많은 세상을 뒤로하고 세상 괴로움을 마치셨다. 

 하나님을 잘 섬기며 믿음으로 사시다가 천국으로 가셨다. 형제들, 자녀 손들이 다 모여 수원에서 천국으로 환송을 해 드렸다.

 

김복래 원로 장로  1932년 7월 23일~ 고전리

형님은 목포 고등성경학교를 졸업하시고 믿음이 돈독하신 분이시다. 정신력이 강하시어 겨울날 새벽에는 일성산 아래 샘물에 가서 냉수마찰을 하면서 체력을 강화시키기도 하셨다. 군 장기하사관으로 계시기도 하셨고, 교회 일에 많은 열정을 보이시기도 하였다. 생각이 명석하신 분이시다.

 고당교회의 열심 있는 제직으로 회계를 맡으면서 건축일에도 심혈을 다하여 봉사하셨다. 중축 공사를 하면서 종각을 옮기고 종을 올리다 종이 떨어지면서 큰 위험을 당할뻔했으나 피하게 해 주셨다. 교회학교와 교회의 제직회 서기로 회계직에 봉사하셨다.

 2남4녀를 선물로 주시고 장로 두분과 사위가 장로로 세움을 받았다. 모두에게 건강을 주시고 지혜를 주셔서 딸들은 권사로, 피아노 반주자로 봉사하게 하시고 사위는 성가대 지휘자로 봉사하고 있다.

노부모님의 건강과 노환에 계신 부모님을 위해 여러 형제들을 대신하여 많은 고생을 하셨다. 너무도 많은 수고와 고생을 하셨다. 하나님의 위로와 복을 주실 줄 믿는다. 지금은 나이가 많으신데도 경운기에 형수를 태우시고 운전하여 들로 다니시면서 즐겁게 해드리는 생활을 하고 계신다.

 

김창동 원로장로 1937년 음 3월 10일~2015년 11월 8일, 향년 78세

동생 창동은 새순 교회 장로로 믿음이 좋은 장로였다. 너그럽고 열심 있는 동생이다. 3남 2녀를 주셨다. 평소에 아시는 목회자들이 개척하면서 건축을 해달라고 하고는 건축이 끝나면 재력이 부족하여 건축비 잔금을 교회 헌금으로 해달라고 간청하여 건축 비용을 받지 못한 예가 여러 곳이 있었다고 한다. 다른 건축업자들보다 저렴하게 일을 해주고 공사비를 다 받지 못하니 애로가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청년 때에 광주로 나와 너무 힘들게 살다 보니 건강이 좋지 않았던거 같다. 나이가 들면서 몸이 약하여지고 건강이 점점 좋지 않아 2015년 11월 8일 주일날 새벽에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어 소천 하게 된 것이다.

 아침에 조카의 전화 연락을 받고 전대병원에 가 보아야 하는 데 가보지 않아서 몹시 미안했다. 그것은 장례절차에 대해서 한 번도 경험이 없어서 이 절차를 잘 아는 교회 목회자와 장례식장에서 잘 알 것이라고 판단되어 그분들에게 문의해 보라고 하고 오후에 장례식장을 갔었다. 일곡동 일곡병원에서 며칠 전에 치료받다가 전대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하여 전대병원으로 갔는데 하루만에 이렇게 됐다고 했다. 너무 미안했다. 평소에 몸이 좀 불편한 것 같았으나 이렇게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왔는지는 너무 놀랐다. 제수씨와 자녀들이 믿음으로 이 어려움을 이겨 나가기를 원했다.

 

김창선 1937년 음 3월 10일 김행우 집사와 홍순림의 사이에서 출생.

1958년 12월 10일 하나님께서 짝 지워준 정우단과 가정을 이루게 하시고 지혜로운 아내와 함께 가정을 이루게 하신 주의 섭리 가운데 행복한 삶을 2남 4녀와 함께 누리게 하셨다. 우리의 연약함을 항상 살피시고 인도해 주심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1964년 3월 23일 갈우 당당뫼로 가게 하시고, 1970년 3월 18일 같은 마을 동백골로 보내셨다. 갈우 복술 형님의 배려였다. 1972년 마을 발동기를 인수받기도 하였다. 광주 창동 동생의 배려로 1978년 11월 11일 광주 신안동으로 이거 하게 하시고, 그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신안교회 성가대원으로 봉사케 하시고 장로로 시무케도 하셔서 너무도 큰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신협과 복지관 감사로 봉사하게 하시고, 신안동 남양파크 관리소장, 입주민 자치회장과 경로당 일도 주민들과 함께 하였다.

 생명의 수한이 다할 때까지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저 높은곳을 향하여 나아가게 하실 줄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