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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동 입대, 김석진 의원, 영명중학교, 가뭄

by 매운 레몬 2023.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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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동 입대 1958년 5월 14일 

 비가 내렸다. 오늘은 동생 창동이의 입대하는 날이다. 문내면 소집 대상자들은 문내면 소재지 우수영으로 집결하여 논산훈련소로 가게 되었다. 전날 저녁에는 고전리 4H 회원들과 송별회를 가졌고 오늘은 동네 주민들이 마을 앞에 나와서 환송을 해주었다. 회원들이 우수영까지 같이 가서 환송해 주었다. 너무도 따뜻한 환송에 고맙게 여길 뿐이었다.

 그동안 동생은 농촌 계몽운동에 적극적이었다. 4H 운동을 열심히 하였다. 그의 앞길에 행운을 빈다. 저녁에 교회를 갔더니 가납리 김중석 친구도 지원하여 입대했다고 들었다. 두 사람이 비었으니 힘이 빠진 것 같았다. 나도 입대하면 가정에 형수와 노부모만 남게 된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논산 훈련소 군종과에 근무하게 되었다. 군에서 제대한 후 경기도 용인에 있는 김용기 장로가 설립한 기독 농민학교에서 1년간 교욱을 받고 농촌 계몽에 앞서나가려고도 했었다. 그런데 영중 교장으로 오셨던 김경태 장로의 신앙에 영향을 받아 광주로 가서 믿음을 지키며 좀 힘들게 살기도 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국회의원 김석진 의원  1958년 5월

 지난 5월 2일에 국민의 지지를 받아 국회의원에 당선된 김석진 의원이 당선 인사차 우리 마을에 오셨다. 들려온 소식에는 이분은 매우 착실하고 결단성이 있고 실천가이고 성실한 분이라고 한다. 전에는 서울에서 활동하신 분이다. 지금까지 도의원으로서 많은 지방 일을 해왔고, 겸손하고 수완이 탁월하다고 한다. 그의 학벌은 국졸이라고 하지만 그의 능력이 탁월한 것이다.

과거 춘천 사건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이 분이 사상 문제인 이 사건을 잘 해결했다고 한다. 문내면 주민 중에 농촌에 계신 분들이 춘천에서 일을 하면서 자기들끼리 농담을 하면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였다고 한다. 다른 손님들이 듣고 신고하여 보안법에 의해 간첩 혐의로 사형을 받게 되는 위험에 처하게 되었는데 김의원이 청와대를 찾아가 이 대통령을 직접 만나 담판을 내어 무죄 판결을 받게 했다는 것이다. 정의를 위해서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결정적인 노력의 결과인 것이다. 참으로 존경받을 만한 분이셨다.

 

영명중학교 1958년 5월 31일

 영명 중학교 개교기념일이다. 각 초등학교 학군별 대항 축구 대회가 있었다. 각 부락 대항 강강술래도 있었다. 농번기 보리 수확기가 되어 매우 바쁜 시가였으나 많은 지역민들이 열심히 구경을 하며 환성을 울리고 응원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들을 가졌다. 맑은 날씨에 뜨거운 햇볕이 내리 쬐여 더웠으나 장사꾼들의 시원한 식품 즉 아이스케이크를 사서 먹으면서 모두들 즐거워했다.

 농촌에서 갖기 어려운 축제이고 활기가 넘친 시간들이었다. 농민들은 이런 시간들을 보내면서 피로를 풀고 매일 힘들었던 시간들을 잊고서 즐길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가정에 가면 평화가 있고 즐거움이 있다. 농촌은 미래에 대한 행복이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하나님이 주신 평화가 우리에게 희망을 나누어 주고 있다.

 내일부터는 농기구를 지게에 지고 들에 나가 열심히 일을 하게 되겠지.

 축구는 항상 우수영 팀과 고당 팀이 명성이 있었고 인기 있는 경기였다. 고당 팀은 고현 4리의 목포 유학생팀 선수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강팀으로 인정받았다. 자랑스러운 청년들이었다.

  

가뭄과 미신 1958년 6월 말경

 우리 지역은 천수답이 많아서 가뭄만 들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이번 여름도 벼 이종을 한 후 비가 오지 않아 마을 근처의 저수지물들은 양수기로 끌어올려 저수지 물이 다 없어지고 논과 밭작물이 생기가 없이 말라져 갔다. 

 주민들은 비가 오지 않는 것은 묘가 있어서는 안될 곳, 즉 명산 어느 곳에 묘가 있기 때문이리고 하면서 여자들이 호미를 들고 일성산 어느 곳에 묘가 있다고 하며 산에 올라가 묘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황산면 옥메산에서도 묘를 파내야 한다고 여자들이 호미를 들고 갔으나 경찰들의 저지를 받고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소문이 들려오기도 하였다. 오죽 했으면 이런 미신을 신뢰하게 될까? 

 결국 주민들이 불을 피울 연료를 준비하여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일성산 봉화대에 올라가 준비한 볏짚이나 보릿대나 건초들을 가지고 올라가 해 질 무렵에 비가 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태웠다. 그 정성과 고생을 가상히 여기셨는지 얼마 후에 비가 오게 되어 한숨 돌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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