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없는 도둑 1960년 3월 3일
교회 주변에 식목을 하기로 하고 찬양 대원 16명과 백행술 친구와, 윤정성 군이 함께 수고했다. 마침 박요다 전도사님이 오셔서 1천 원을 주고 가셔서 고마웠다. 점식은 교회에서 해주시고 우리는 교회 화단 정리와 꽃밭을 정리하고 정원수들을 정리하였다.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일을 하면서 이런 이얘기를 들었다.
어제 저녁에 고대리에서 보리쌀 2가마를 도둑맞았느데 아침에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니 길 위에 보리쌀이 몇 개씩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몇 사람이 개속 추적해보니 화원면 척북리까지 갔다고 한다. 약 10리 정도 떨어진 일성산 뒤편에 있는 마을이다. 쥐가 가마니에 구멍을 뚫어서 가마니에서 곡식이 길에 떠어져 추적을 당한것이다.
찾아가 보니 집주인은 세상 모르고 잠자고 있더라는 것이다. 요사이 여기저기서 도둑맞았다는 소식이 자주 들리고 있다. 생활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 수 있는 단면이기도 하다. 춘궁기에 농촌에서 얼마나 어려웠던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다고 남의 것을 훔치는 마음은 없어야지. 도둑질은 모르고서는 못하는 것이다. 사전 답사를 잘하고 하는 행위일 것이다.
정명진 둘째 처남1960년 3월 14일
500평 되는 2마지기 논에서 형님 소를 가지고 쟁기질을 하고 집에 왔다. 집 앞에서 아내와 같이 둘째 처남이 서 있었다. 알고 보니 해남 화산면에서 트럭 조수로 일을 하다가 후진하는 차에 상해를 입게 되어 해남읍 병원에서 입원 치료받다가 안좌 집과 우리 집에 편지를 했으나 아무 소식이 없어 왔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는 소식이 오지 않았었다. 병원에 있으면서 외로워서 찾아오신 것 같았다.
안좌에서 자기 동생이 교회 다닌다고 집안에서 가장 못마땅하게 했다는 분이다. 그런데 우리 집에 지팡이를 짚고 들어와서 아버님께 무슨 말을 했으나 나이 많으신 아버님은 잘 알아듣지 못하고 어떤 거지가 와서 그러느냐고 나가라고 큰소리로 말하자 자신이 거지 취급받으니 너무 슬펐다는 것이다. 아내가 방에 있다가 소란하여 나와 보니 오빠였다. 마음 상한 오빠가 가겠다고 하여 달래는 중이었다. 겨우 오해를 풀고 아버님꼐 말씀드리고 저녁을 보내면서 지내온 이야기도 하고 다음날 가셨다.
1960년 6월 26일 두 번째 찾아 오셨다. 2009년 2월 8일 목포에서 사시다가 몸이 좋지 않아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셨다.
지방학교 영명중학교를 위한 땀 흘림 1960년 5월 23일
영명중학교를 증축하기로 하여 주민들이 동원되었다. 일성산 뒤편 가납리르 지나 일성산 중턱에서 석공들이 정과 큰 망치로 화강암을 쪼게어 냈다. 60근 이상으로 된 것을 지게로 운반 한것이다. 한 가정에 할당 된 돌덩이는 8개씩이었다. 나는 오전에 온 힘을 다해 2개씩지고 3번 다니고 점식을 한 후 오후 1회 두 덩이를 다 운반하였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한 덩이에 50원씩을 주고 구루마(수레)에 맡기기도 하였다. 한나절에 2회가 정상인데 나는 빨리 끝내기 위해 억척스럽게 했다. 돌을 지게에 지고 비포장된 농로 위험한 길을 다녀야 했다.
비 포장된 도로를 가자면 약 100미터 정도 가면 쉬고 가야 한다. 돌을 등에 지고 오기 때문에 등에 달라붙는듯하고 발바닥은 쓰리고, 땅에 달라붙은 것 같았다. 다리는 휘청 휘청한다. 그 괴로움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참고, 참고, 또 참고. 우리 농촌 사람들은 이렇게 살면서도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1960. 4.19혁명
1960.7.5 창동이 동생일 군에서 휴가를 나왔다.
1960. 7. 27 대통령 윤보선 및 총리 선거. 장면 총리 당선
1960. 7. 27 민의원 220명, 참의원 56명 선출
우리 농사일을 도와주신 분들 1960년 6월 24일
농번기다. 나는 연속하여 부라민과 품앗이를 하고 어떤 때는 아내도 품앗이 이종도 나갔다. 보리 추수와 탈곡이 항상 겹친다. 아버지는(82세) 마음으로는 일을 돕고 싶어 하지만 몸이 감당을 못하고 어머니는 아기를 보아야만 하셨다. 우리 둘이서 하는 일에 힘들게 보이면 이웃들이 오셔서 도와주기도 하였다. 그분들은 앞집에 사신 장 순진의 어머니와 김 광언의 모친과 그의 할머니들이었다. 아내의 건강을 걱정해 주신 분들이다.
나도 일을 계속하다 보면 몸살이 날 정도가 되기도 한다. 오늘 오전에 남의 벼 이종을 갔다 와서 오후에는 약속해 준 데로 고당리 조기온 씨 기계가 와서 보리타작을 하고 이웃분들이 오셔서 도와 주셨다. 너무도 고마우신 분들이다. 어떻게 보답할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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