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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왕 록펠러

by 매운 레몬 2024.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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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데이비슨 록펠러 : 미국 석유 사업가

아버지와 함께 오하이오 스텐더드 석유회사 설립 미국 내 정유소의 95%를 지배

 

유년 시절을 가난하게 살았다. 그러나 공격적 경영으로 33세에 백만장자가 되었고 43세에 미국의 최대 부자가 되었다. 53세에는 세계최대의 부자가 되었으나 행복하지 않았다. 그런데 55세에 불치병에 걸려 모든 병원의 의사들은 그의 수명이 1년밖에 안 남았다고 선고하였다.

그는 어느 날 희망을 잃은 마음으로 휠체어를 타고 최후로 확인 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 로비에서 기다리며 벽에 걸린 액자의 글귀를 보게 되었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 그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적시며 지금까지 모으기만 하고 베풀 줄을 모르고 살아온 자신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조금 후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 여자가 딸의 입원비 문제로 입원비가 없으면 입원이 안 된다고 하는 병원 측에 먼저 입원해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록펠러는 비서를 시켜 소녀의 입원비를 지불하고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하였다. 그 후 소녀가 회복되어 퇴원하는 것을 보고 삶의 행복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나누는 삶을 시작했다. 동시에 신기하게도 그이 병이 치유되기 시작했다. 그 뒤 98세까지 살면서 나누는 삶에 힘쓰고 선한 일을 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그의 회고록에서 "인생 전반 55년은 쫓기면서 불행하게 살았지만 후반기 43년은 참으로 행복하게 살았다."라고 했다 나누는 삶이 행복이고 평화다.

록펠러 가문은 수십 년간 뉴욕 시민 전체의 수도세를 대신 내오기도 했다. 

2010년 록펠러 가문의 총재산은 1720조 원으로 보고되었다.

 

지구 가까이 오는 소행성

1km 안 밖의 소행성 목록에 1999년 AN10을 등록했다. 1999AN으로 등록된 소행성이 지구 3만 km 거리를 스쳐 갈 시기는 2027년 8월 7일로 천문학자는 예고하고 있다.

1999년 1월 13일 미국 공군 천문대와 메사추세츠 공과대학 팀이 발견하기까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 항공 우주국 폴 코다스 박사는 2027년이 아니라 2044년 8월 6일이나 2046년 8월 6일이 가능성이 더 크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충돌 위험도는 50만 분의 1 정도이다라고 했다.

소행성 크기가 지름이 100m 이하는 추적 불가능으로 공습 무방비 상태인 것이다.

소행성은 지름 100m 이상인 것은 약 30만 개로 추정한다.

현재까지의 이름이 붙여진 것은 6,000개에 불과하다.

지난 1908년 시베리아 퉁그스카 지역에 떨어진 소행성은 서울의 3배 지역의 침엽수림을 초토화시켰다.

소행성의 지름은 50~60m에 불과했다.

-2001년 1월

 

거스 히딩크의 통솔력

히딩크 감독은 2002년 5월 31일~6월 30일 월드컵 한국팀 감독 (네델란드인)

1946년 11월 8일 네델란드 동부 작은 마을 바르세펠트에서 초등학교 교장 헤르드의 6남 중 셋째로 출생.

 

네델란드인은 말하기를 "세계는 신이 만들었고 네델란드는 우리가 만들었다. 네델란드엔 고정관념이 없다"라고 하는 신념의 나라다.

히딩크는 "나는 영웅 같은 것엔 관심이 없다. 좋아하지도 않는다. 나는 내 일을 좋아하고 내 일을 할 뿐이다. 나는 대한민국 축구팀을 이끌고 있는 작은 독재자로 만족한다"라고 했다.

히딩크가 추구한 지도력에는 강력한 체력을 바탕으로 90분간 쉬지 않고 밀어붙이는 체력과 빠른 속도에 11명 전원이 공격과 수비를 함께 갖추는 단결력과 용맹에 있었다. 그는 한국에 온 이래 평균수면을 4~5시간으로 했다고 한다. "유명세는 필요 없다 중요한 것은 오직 운동장에서 (경기장) 보여 주는 실력이다. 히딩크를 해칠 수 있는 행동 경기는 용납하지 않는다."

선수의 뽈 터치 햇수는 한 경기(90분)에서 평균 한국선수는 60~70회, 펠레(브라질) 선수는 평균 96회, 프랑스의 지단 선수는 평균 109회로 나와 있다.

선수들이 상대의 기를 꺾을 수 있는 경기를 요구했고 사소한 것에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에 와서 팀 분석을 끝내고 팀 장악에 들어가면서 지시 내용은.

1. 모든 선수단은 식사시간에 식당에 동시에 입장해서 동시에 끝낸다.

2. 훈련을 하거나 밥을 먹을 때는 물론 어디에서나 복장 통일하며 축구협회 직원에게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3. 식사시간과 공식 업무시간 중에는 휴대폰이 울려도 받지 않는다, 히딩크는 본국에서 전화가 와도 받지 않았다.

4. 선수단 모임에는 선수단 이외의 누구도 참관 금지이다.

선수간의 소통으로 소리를 질러야 한다고 했다.

 

한국이 4강에 이른 것은 감독의 지도력이 탁월했고 또 한 가지는 국민의 성원이 컸었고 더 중요한 것은 가족과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였던 것이 이면에 있었다.

"프로는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경기장에 들어가면 간섭하지 않았다.

"축구만 알면 바보다.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거스 히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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