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성경고등학교, 권오균 목사, 음악의 재능, 선거장

by 매운 레몬 2023. 3. 16.
반응형

동계 성경고등학교 1958년 1월 1일 (1개월)

 나는 성경 지식이 너무 없었다. 배운 것이 없이 설교만 들어왔다. 1950년 5월 10일 이순영 목사로부터 입교 문답을 받고 교인으로 인정받았다. 1958년 1월 목포 노회에서 시행하는 계절 성경학교 모집이 있어서 처음으로 등록하여 1개월 동안 교육을 받았다. 매년 1개월씩 3년을 이수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친척이 없으면 갈수도 없었다.

 나는 이번 1년째에 참석했다. 우리 교회에선 김중석과 정유균 3명이었다. 1,2,3년차. 전체 70명이 강의를 받았다. 수료 시 나는 2등 수상했다. 숙식은 생활이 매우 어려운 작은 누나 장덕순 누나 집에서 신세를 졌다. 생활이 어려운 중에도 나를 몹시 생각해 주셨다. 나는 그 어려움을 잊고 지냈다. 식량이라도 가지고 갔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1월의 날씨가 무서운 추위로 땅이 빙판이 되어 어려움이 많았다.

2년째는 1959년 1월 1일~ 1개월간, 3년째는 1973년 1월 1일~ 1개월간  3년 수료했다. 3년 수료하면 호남 신학교를 입학할 자격을 주었으나 나는 가족이 있으니 기대하지도 못하고 그런 사명감도 없었다. 당시 목포 고등성경학교 3년 졸업에 준한 것이다. 실제로 수료 후 호신에 다니신 분도 있었다. 그 당시 호신은 정식으로 대학교로 인가가 없던 때였다. 교단에서는 호신 수료자를 목사로 안수해 주었다. 당시 교육부로부터 대학교로 인가가 나오지 않았던 때였다.

 

권오균 목사 부흥 집회 1968년 3월 19일 (수요일)

 광주 월산교회에서 목회하신 목사님이시다. 지금까지 말씀의 은혜를 실감하지 못했다. 오후 2시 성찬 예식을 베풀었는데 참석하였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감격을 체험하게 되었다. 참으로 은혜로운 순간이었다.

 말씀과 기도로 주님이 우리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를, 죄인 위해 흘리시고 그 피를 믿는 자들에게 죄 사함을 받게 되었고 우리 죄를 속량하신 그 은혜를 감명 깊게 체험하였다. 목사님의 간절한 기도와 말씀의 선언이 우리에게 힘을 주심을 감사하게 되었다. 좀 더 신실한 성도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집회 기간 동안에 김자권 집사님께서 앞으로 나오셔서 간증을 하시기도 하셨다. "나느 인간적인 면에선 너무도 부덕스러운 생활을 하였으나 환상으로 보여 주시는데 주님께서 나를 붙드시고 함꼐하시는 것을 보았으니 주님께 감사할 뿐이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얼마 있으면 하나님 나라에 갈 것인데 그때까지 주님께서 함께하실 것을 믿는다"라고 하셨다. 너무도 감사한 순간이었다.

 

음악의 재능을 주시다

 1958년 4월 1일 나는 지금까지 농사만 여룽하다 보니 이길밖에 없는 줄 알았다. 내게 주어진 환경이요 업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이 이상의 것을 알지를 못하고 살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농사만이 아니고 음악을 해보아야 한다는 재능을 알게 해 주셨다. 삶의 아름다움을 생활에서 얻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바위고개 언덕'을 '흑인영가' 등 교재에서 배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너무 좋았다. 음악통론에서 기초지식을 습득하였으나 지도하는 사람은 없었다.

 봄에는 토지가 적으니 연료가 부족하여 산으로 들로 다니며 땔감을 마련해야 했다. 산에 가서 찬송가나 가곡, 민요 등만 즐기고 가요(유행가)는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교회 교사로 성가대원으로 열심히 봉사하기 시작했다. 오직 하나의 의지뿐이었다.

 소나무가 많은 높은 산에 가서 솔잎을 모아 가지고 지게에 지고 온다. 여자들은 크게 둥치를 만들어 머리에 이고 집에 가지고 와서 음식을 준비하고 추위를 이겨 나갔다. 곡갱이나 갱이를 가지고 나무를 해 가지고 와서 온돌방을 뜨겁게 하고 맛있는 고구마와 무 싱건지를 함께 먹으며 즐겁게 일을 했다. 겨울이나 비 오는 날은 짚 가마니를 짜서 팔기도 하면서 시간을 내어 음악을 공부하기에 힘써 노력했다. 이런 연료 마련도 산주의 단속과 산림청 단속이 심했다.

 

처음으로 선거장에 나갔다 1958년 5월 2일

 오늘은 우리나라 제4대 민의원 선거일이다. 내게도 헌법이 허용한 국민의 권리와 의무인 투표할 자격이 주어졌다. 꼭 투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문내초등학교 투표장에 나갔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면서 투표를 하였다. 우리 지역인 해남 을구에는 두 사람의 후보자가 출마하였다. 자유당의 김석진 후보자와 야당의 민주당 후보자 민영남 씨가 선전을 펴나갔다.

 오전에 듣자니 목포에서는 환표 사건이 있었다고 방송이 나왔다. 자유당 정부가 부정 부패가 심하다고 민심이 좋지 않았다. 이승만 자유당 정권 시절이다. 다음날 투표의 개표 결과는 자유당 김석진 씨가 당선되었다고 발표되었다. 참으로 혼란한 시기였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