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되어가는 아내 1969년 4월 24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아내의 병세가 좋아가고 있었다. 부족하지만 아내의 건강 회복을 위해 많은 기도를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멀다고 하면 먼 곳, 배를 두 번 갈아타고 가야 하는 섬, 안좌면, 믿음만을 보고서 여기가지 시집왔는데 마음의 평안은 고사하고 몸까지 절망스러운 지경에 왔으니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친청이라도 가까우면 연락해서 병시중을 들어 위안을 갖게 했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인데 아내의 모습을 보노라면 애처로운 마음이 나를 지배하고 만다.
밤 11시가 되었을 가 우리 방 동편에 있는 방 창문에 환한 달빛이 들어왔다. 문을 열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바람을 쏘이고 싶다고 하면서 나가자고 하였다. 마음의 위로가 될 것 같아 몸을 부축하여 밖으로 나오니 마침 맑은 하늘에는 휘영청 달빛이 한 구루 분홍빛 장미에 비추니 분홍빛 장미가 왜 그리도 아름다웠던지, 너무도 좋아하며 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가 추위가 들어 건강을 해칠까 봐 방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한순간이라도 위안이 있었기를 바랄 뿐이었다.
나의 마음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나는 아내의 마음을 위로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 아내 역시 몸이 아프고 의지할 사람은 남편밖에 없으니 남편에게 대한 의지하는 마음을 더 가진 것 같았다. 나의 신앙심은 매우 나태해졌다. 나를 지켜주시고 도우시는 하나님꼐 감사를 드렸다.
존경하는 김화섭 장로님의 방문 1958년 5월 18일
나는 게으름뱅이가 되고 만 것 같다. 늦잠이 일수였고 할 일을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아침에 나를 깨우면서 하시는 말씀이 "늙지나 안 했으면 이런 꼴을 안 볼 것인데" 하시면서 탄식 하고 계셨다. 그러면서 늦잠만 잔다고 꾸중하신 것이다. 내 몸은 그렇게 지친 상태였다. 나는 나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우리 교회 수석 장로님이신 김화섭 장로님이 위로차 방문하셨다. 김 장로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교회를 지으면서 목수가 들보에다 올려놓은 큰 망치인 메가 떨어져 머리를 맞아 다친 후 항상 머리에 통증이 있어서 목포나 광주에 있는 큰 병원 다섯 곳을 다니며 진료를 받았는데 어떤 병원에서는 뇌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병원에서는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4개월만 쉬면은 좋아질 것이라고 했으나, 하나도 해 보지 못하고 성경 보기와 기도로 지내고 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우리더러 모든 것을 참고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격려해 주시고 기도해 주셨다.
김 장로님은 교회를 위해서 일하시다가 이렇게 고통을 당하시고 계셨다. 장로님은 때때로 머리가 아프고 정신마저 몽롱하여 먼 하늘만 쳐다보고 계신 것을 늘 보았다. 장로님의 그 안타까움을 누가 이해해 주겠는가,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시고 함께해 주시지 않으면 감당하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리라. 장로님의 몸과 마음이 힘든 상태가 되고 보니 교회 일에도 항상 열성적으로 할 수 없음을 알 수가 있고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젊은이들은 이런 장로님의 심정을 모르고 교회일에 적극적인 관여를 않으신다고 오해하기도 하였다. 인간에게 다가오는 고난을 참고 나가면 행복이 올 것이라고 누구나 말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연약함을 자신의 의지와 믿음으로 이겨 가기는 너무 힘들다. 고난을 참고 나가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하는 말대로 모든 것이 바라는 데로 이뤄지는 삶이 오기를 믿고 나아갈 뿐이다. 우리 교회 여 집사님들이 자주 심방을 오셨다 위로하고 가신다. 고마웠다.
아내의 어머님이 오시다 1959년 5월20일
나는 얼마 전에 처가인 안좌면 존포리에 편지를 보냈다. 아내가 어머니를 보고 싶어 하고 건강이 좋지 않아 찾아 주시면 건강 회복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오시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오늘 오후에 오신 것이다. 장모님이 오시는데 교통 편이 매우 불편하였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장모님은 우리의 결혼 후 처음 방문한 것이어서 더욱 반갑고 아내에게 위로가 된 것 같았다.
편지를 받고 오시면서 장모님은 속으로 생각하기를 혹시나 죽지나 안 했나 하고 몹시 걱정하면서 목포를 거쳐 여객선에서 고텽리 선착장 종선에 옮겨 타고 오시면서 옆에 계신 분에게 우리 가정 사정을 물어보셨는데 마침 아신 분이 계셔서 하시는 말씀이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하셔서 걱정이 놓이더라고 하셨다.
장모님은 큰딸이 해남 송지로 결혼했다가 처 아기를 가진 후 약을 잘못 써서 돌아가신 일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아내도 역시 그런 생각이 마음에서 떠오르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어머님은 딸과 함께 즐겁게 지내시다가 5월 22일에 집에 가셨다. 아내는 형수가 세 번째 아이를 출산하여 돌봐드렸다. 아내가 친정에 갈때는 아버님이 동네 사람에게 부탁하여 뻘낙지를 잡아다가 몸보신을 잘해주어 건강이 많이 좋아지게 했다. 그래서 친정 부모님이 좋은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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