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촌 당숙 김성우 집사의 소천 1959년 1월 20일
문내면과 황산면 격계에 있는 성만리에서 부고가 왔었다. 선친과 함께 고당교회를 초기에 설립을 하신 분이시고 내게는 5촌 당숙이시다. 노환으로 작고하셨다는 부고를 인편으로 전달받았다.
눈이 많이 와서 길이 좋지 않았다. 나는 신혼인 신부와 형수와 노부모님을 집에 계신 것을 생각하면서 혼자서 금강호 해변 길로 일정리와 삼덕포를 지나 성만리에 도착했다. 길이 눈이 녹아 매우 불편하였다 처음 가본 길이다.
주민들에게 길을 여쭈어 가면서 오전 10시경에 도착하였다. 출상을 하고 있었다. 상여를 따라 산으로 가서 분묘를 마치고 나니 오후 2시경이었다. 장례는 교회 의식을 따랐다. 상가집인 김재옥 형님 집에서 밤을 보내고 3일째인 삼오에 함께 산에 가서는 어떻게 할지를 모르고 서 있는 데 형님이 기도하라고 했다. 다른 형님들은 절을 하고 있었다.
장례를 마치고 집에 오려고 고당리 상술이형(집안형님) 부친과 나오는데 고당리 김화섭 장로님과 김세봉 집사님이 오신 것을 보고 인사한 후 우리는 걸어서 집에 왔다. 집에 오자 이은배(친구 이현배 형)의 결혼식이 있어서 축하하러 들렸다.
날마다 배우면서 살아가야 했다.
결혼 후 처가 집 방문 1959년 1월 30일~2월5일
결혼한 지 2개월이 지났다. 아내는 아는 사람이라고는 나밖에 없고 의지하고 위로를 해줄 사람도 남편밖에 없다. 아내는 몸이 극도로 약해져 친정에 가서 쉬었다 오고 싶어서 설명절 전에 친정에 가고 자 한 것이다. 가까웠으면 몇 번 갔다 왔을 것인데. 결국 알고 보면 남편의 적극적인 결단이 부족한 것도 있으리라.
부모님과 형수의 동의를 얻어 떡을 한 석작 가지고 함께 출발했다. 이때 마침 목포 작은 누나가 오셔서 짐을 가지고 번갈아 가며 화원에서 배를 타기 위해 걸어갔다. 처가를 가려면 배를 두 번 갈아타야 했다. 그것도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목포에서 자야 했다.
차가 별로 없으니 가다가 해남에서 차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걸어 간 것이다. 개초리(절반 정도의 거리)에 가니 해남에서 우수영을 거쳐 금성 여객이 왔다. 승차하여 목장 선착장에 가서 배를 기다려 명성호(목선)에 승선하였다. 목포에 도착하니 오늘 안좌 가는 배가 바람이 심하여 출항 금지가 되었다. 할 수 없이 짐을 선창 가까이 있는 김상섭 씨가 운영하는 정미소에 맡기고 대성동 큰 누나 집에 가서 밤을 보냈다.
다음날 일찍 선창에 나와 보니 출항 허가가 없었다. 조금 기다렸다가 11시 반에야 바람이 줄어들어 출항 허가가 나와서 안좌면 복호 가는 배를 타고 복호에 도착하여 마을에 들어가니 마을 분들이 반가이 맞이하는 인사를 주셨다. 아내도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집에 가니 부모님들은 계시지 않고 형수만 계셔서 연락하여 오셔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한 살 손아래 (사촌 간) 정옥인 처남과 대화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다.
주일날은 대리교회에 가서 김재관 전도사를 만나 대화를 가졌다. 수요일에 아내에게 내일 가겠다고 하지 아내는 설을 보내고 몸을 쉬었다가 가겠다고 하여 허락하고 목요일에 아내와 처갓집 식구들의 환송을 받고 목포에 와서 배를 타고 고평리 선착장에 내려 귀가했다. 형수가 나오셨다. 형수는 함께 올 줄로 만 생각했는데 서운해하신 것 같았다.
아내가 몸과 마음이 힘들어 하여 쉬고 온다고 말씀드렸다. 내 마음은 우리 하나님께 의지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나는 마음이 약했다. 모든 것을 하나님만 의지할 뿐이었다.
황산면 친척 집 방문 1959년 2월 10일
중학교 동기인 황산면 예임리에서 사는 김용학과 김정열이 학교 다닐 때 우리 마을 고전리에서 자취를 하였던 터라 놀러 온 것이다 여러 이얘기를 나누고 오후에는 성만리 김재옥 형님 댁을 예정대로 방문하여 인생 살이에 도움이 되는 많은 이얘기들을 들었다.
한복을 입고 다니니 길이 좋지 않아 많이 불편하였다. 2월11일에 성만리를 떠나 황산면 우왕리에 계셨던 김재관 형님 집을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형님은 독학을 하여 영명중학교 영어 교사로도 근무하셨다.
후한 대접을 받고 황산면 병원리 매씨(김복림, 박부귀) 댁에 가게 되었다. 아들 조카애가 우리 집에 왔었기에 동행했던 것이다. 매형은 술과 담배로 기침이 심했다. 2월 12일에는 황산 연당리 중학교 친구인 김상윤을 만남 후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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