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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신앙체험기록 3

by 매운 레몬 2024.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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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딸의 난치명을 고침 받음

셋째 딸이 서울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결핵성 임파선염(나락)이 걸려 치료하며 수술을 해도 재발하고 약은 많은 양을 먹어도 효과가 없었습니다. 집사람이 좋다는 약을 구하러 타 지역까지 다니며 약을 구해와 먹여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나는 초저녁에 뒷산에 가서 몇 시간씩 기도하기를 여러 날 하였습니다 1983.09.04. 일 교회 2층에서 밤샘기도하고 새벽이 밝아 주일날이라 1km 된 거리의 집으로 와서 식사하고 다시 교회 갈 준비를 하려 하는데 비가 강하게 와서 포기하고 계속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도중에 세미한 음성으로 찬송 324장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의 373장 "고요한 바다로' 2절은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나중에 5절 추가해서 "내 평생 가는 길 주 인도하시고 나 주만 의지하오니 늘 함께 하소서"라고 찬송했습니다.

 

1984년 어느 날 오순용목사님이 시무하실 때에 오권사가 오셔서 안수 기도를 별관에서 한다는 말을 집사람이 버스에서 듣고 와서 딸과 같이 별관 구석에 앉아있었는데 오권사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구석진 곳으로 걸어오셔서 딸의 목에 손을 얹고 기도하셨습니다. 다음날 보니 양편에 달린 많은 혹들이 시퍼렇게 다 죽어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은혜에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그 오권사는 배운 것이 없어 성경도 잘 못 읽으시나 설교하실 때는 성경 몇 장 몇 절을 읽으라고 하시고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박○희대통령이 돌아가실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다고 합니다. 우리 딸은 건강하여져서 40kg 벼가마를 혼자서 드는 것을 주변 장로님이 보시고 놀라워하셨습니다. 지금은 권사님이 되었고 결혼 전부터 해온 교회 반주와 주일학교 교사 직분을 잘 감당하며 미력하나마 주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6.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1983.08.22~27. 일까지 6일 동안 담양군 변화산 기도원에 다녀왔습니다. 일행은 최석례, 박광례, 죄정덕집사님(그 당시 직분)과 저 4병이었습니다. 기도원에 다녀온 후 8월 29일 이 날은 비가 와서 집안일을 정리하고 마래에 있는 좁은 이층에 올라갔는데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골로새서 1장 24절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이 음성을 듣고 빨리 내려와서 성경책을 찾아 읽어보았습니다.(이전 성경임)  그때가 11:30분이었는데 아무 생각도 없이 무심코 다락에 올라갔는데 이런 말씀을 주셨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못된 판단일지 모르나 피로 사신 몸된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는데 낙심하지 말고 주님의 십자가만을 생각하고 주의 일을 하라며 용기를 내라고 주시는 말씀으로 마음에 굳게 새기며 한 없이 울었습니다.

 

수고하고 애써도 칭찬은커녕 쓴소리 하기를 좋아하는 이가 더 많기도 하지만 주님은 다 알고 계시지요. 말로만 하지 말고 핑계만 대지 말고 내 몸으로 희생하며 교회를 위하여 미력하나마 내일같이 생각하고 수고할 때 행한 대로 상, 벌을 주실줄 믿고, 사명인 줄 알고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지 말고 누가 질투하거나 알아주지 않거나 개의치 않고 나의 힘 닫는 대로 묵묵히 주의 일을 하리라 다짐하였습니다.

 

7. 둘째 아들 결혼

제가 춘천 2군단 군수처에서 근무할 때에 둘째 아들을 출산했는데 출산할 때에 얼굴에 흠이 있었습니다. 20대 후반까지 경기도 성남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결혼 적령기가 되어 걱정이 되었습니다. 결혼 문제를 놓고 애써 기도하고 있는 중 어느 날 모방에서 기도하다가 거기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에 "남리교회 정복동집과 결혼하라"라고 강하게 음성이 들려서 일어나서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제가 해남 진도 지방회에서 서기, 회계를 많이 했기에 황산면 남리 교회가 개척할 당시 그 교회 전도사님과 함께 지방회에 참석했던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분이 시무를 하시지 않고 모르는 분이 시무를 하시는데 어떡할까 생각하다가 다음날 그 교회를 시무하시는 박장원전도사님께 전화를 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분의 막내딸이 부산에서 회사에 다니는데 결혼을 서두르지 않고는 있지만 혼사 얘기가 있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베필로 알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후로 계속 기도를 하는 중 하나님께서 작정 하신일이라 믿고 추진하여 음력 설에 고향에 내려오면 만나기로 하고 아들의 얼굴에 대한 이야기도 했습니다. 나의 걱정과는 달리 얼굴에 있는 흠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고 만남이 결과가 좋아 1990.02.02. 일 고당교회에서 김원옥목사님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들의 결혼을 놓고 오직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께 환상으로 보여 주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어느날 하나님께서 뚜렷하게 환상으로 예쁜 한복을 입고 날씬한 모습으로 서 있는 아가씨의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남리교회 정집사님은 처음 개척교회 때부터 수고하셨으나 결혼당시에는 안 계셨지만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줄 믿었습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사택에서 폐백을 드릴 때 한복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며느리의 모습이 환상에서 보았던 그 모습이었습니다. 모두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은 아들과 자부가 고당교회 장로와 권사가 되어 부족하지만 주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고 있습니다. 아들은 현재 발달된 의술로 많이 치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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