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정우단)의 입원 2017년 12월 25일
몸이 점점 약해졌다. 2017년 12월 14일부터 24일까지 큰딸이 사는 곳. 그 근처에 있는 군산 누가병원에서 2주간 치료받고 아무런 차도가 없어 귀가하기도 했다. 석호와 지호 차편으로 왕래하였다. 집에 와서 오늘 2017년 12월 24일은 변비로 인해 셋째 딸 효실이 차로 광주 현대병원에 가서 치료 받았다. 기력이 자꾸 떨어져 현대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군산 누가병원에서 찍은 MRI 사진을 보도록 내과 원장에게 제출했다. 내과 원장은 현재 뇌가 백색증이 되어 치료 불가능이라 했다. 음식을 먹어도 잘 넘어가지 않으니 호수를 주입해야 될거라고 하였다. 연하작용이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증세가 매우 급하게 나타났다.
나는 결국 아침에 일찍 일어나 현대병원에는 딸 효실에게 맡기고 용봉 국교 앞 효드림 요양병원으로 찾아갔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갔더니 행정원장이 응접실에 계셨다. 상담을 했더니 모든 소모품은 병원에서 제공하고 1개월에 45만으로 입원할 수 있다고 하였다. 2017년 12월 29일 오전에 현대병원에서 치료비 정산을 하였다. 그리고 요양병원 앰뷸런스로 요양병원으로 옮겨 입원 했다. 집에서 거리가 더 가까워져서 아침 일찍 나오기가 더 편했다. 보조침대가 없어서 낮에만 있어야 했다. '사람은 누구나 일생동안 죽고 사는 위기를 3~10번 겪는다'고 한다.
효드림 요양병원 2017년 12월 29일
1층 중환자실에 안내받았다. 이곳에는 거의 호스를 코에 넣고 묽은 죽으로 음식을 투입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것을 해주지 말라고 했다. 인위적인 생명 연장을 원치 않았다. 저녁에는 집에 와서 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나 전기밥솥에 시간 예약을 해 놓고 아내 옆에 가서 살펴 주었다. 병원에선 아침 7시에 식사시간이었다. 간호사와 요양사들이 잘 살펴 주고 있었다. 아내는 아무 말이 없다. 말을 하면 눈을 바라보기만 하는 정도였다.
2018년 1월 초에는 폐렴증세가 있어서 치료 후 곧 좋아졌다. 나는 이 추운 계절에 생명을 거두는 일이 없게 해 주시라고 기도하면서 3, 4월경 봄이 되면 모든 일이 발생하게 해달라고 날마다 기도했다. 요사이 날씨가 계속 눈도 오고 매우 추웠다. 자녀들이 매주 왔다가곤 했다. 효도의 정성을 기억한다. 날씨가 계속 좋지 않았고 아내는 병원에서 제공한 죽을 조금씩 또는 먹지 않기도 하였다. 준비한 간식과 음료수도 조금씩 드셨다. 잘 삼켜지지르 않았다(연하작용). 병원에서는 호수를 통해 음식을 주입하자고 했으나 나는 계속 반대하고 영양주사를 부탁하였다. 하얀색 콤비 풀렉스를 1만원 예납하고 나면 놓아주었다. 몸이 약할 때는 지금까지는 다른 영양주사(수액)를 늘 맞아왔다.
이 병실에는 많은 환자들이 중환자였다. 내과원장은 말을 듣지 않으려면 왜 있느냐고 하였다. 이런 중에도 아내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효드림에서 있을 때 나는 아내 옆에서 찬송을 불러 주었다. 식사가 끝나면 찬송 3곡을 조용히 부르면 눈을 감고 조용히 잠든다. 말은 없으나 여보 고맙소 고마워요 얘들아 예수 잘 믿고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라고 말을 하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잠들어 쉬는 것을 보고 집에 와서 식사하고 점심때도 역시, 저녁에도 저녁식사가 끝나면 집에 와서 식사하고 휴식에 들어간다. 이렇게 해서라도 아내에게 위로가 되어 준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라고 생각하며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이제는 간식을 잘 먹지 못했다. 점점 죽도 못 넘기고 음료수도 잘 넘기지 못한다. 약도 삼키지 못한다. 연하작용이 떨어져 4월에는 영양주사(콤비 플럭스)도 힘들었다. 아내 곁에서 함께 한다는 것이 내 마음을 위로해 주고있었다. 병실에는 환자와 간호하는 자들만이 있고 보호자는 거의 없었다. 인간이란 이런 존재인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가족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가, 천국이 없다면 얼마나 불행하고 외로울까?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는 우리의 믿음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묘지로 사용할 토지 구입 2018년 1월 16일
해남 서북부지방에서 제일 놓은 일성산 남 서편에 있다. 우리의 고향이다. 소년 시절부터 광주로 이사 올 때까지 오르내렸던 산 밑이다. 여기에서 나무를 하고 일성산에서 봄철에 소풍을 하던 곳이다. 당초에는 광주 근처 곡성에 산을 구입 했다가 조건이 맞지 않기도 하고 옆 산주가 자꾸 팔라고만 하여 팔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지역을 아들들과 같이 찾아보았으나 마음에 들지 않아 걱정하던 차에 고향 큰집 식구들의 도움으로 구하게 되었다. 지나놓고 보니 모두가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이루어진 것으로 확신하게 되고 감사를 드렸다. 아내를 병원에 혼자 두고 다니기도 하니 미안했지만 마음 속에 교통함이 있었으리라고 생각되었다.
큰아들 석호가 토지 소유자와 약속한 시간에 맞추어 기다리는 곳에 있었다. 나는 영란이 차로 현지를 답사하고 목포 옥암동 법무사에 갓 매매 절차와 등기까지 마쳤다. 초봄인데도 비가 많이 쏟아지는 날씨였다. 밭은 억새풀로 뒤 덮였다. 하나님께서는 큰 아들을 목포에서 살도록 하시고 관리하도록 하신 것 같았다. 묵은 밭을 중장비로 보기 좋게 정리를 다하였다. 석호가 수고를 많이 하고 지호도 와서 도와 주었다. 이런 결과에 큰 집식구들에게 고맙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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