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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순, 사이비, 결혼, 새벽송

by 매운 레몬 2023.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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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순 권사

 평소에 우리를 가장 아끼시고 사랑해 주셨던 누님이시다. 무슨 일에 나 불평이나 원망도 없으시고 남을 도와주기를 좋아하시고 가난한 자 들을 도와주시고 가난 속에서도 즐겁게 사시고 무엇이든 남에게 주기를 좋아하신 분이시었다. 1958년 2월 27일 안좌에서 일을 보고 목포 누나 댁에 들렸다. 1958년 3월 1일에 누님의 부탁으로 목포 성덕 고아원을 찾아가 집안 형님 되신 김부열 형님을 만나 누나의 아들 최 군을 고아원에서 보호해 줄 것을 부탁하여 찾아갔더니 허락을 하셨다.

 누나는 첫 번째 결혼을 화원 월산리 최씨 집으로 결혼했으나 남편은 일찍 가시고 문내면 고평리로 재혼하셨다. 2녀 1남과 함께 목포로 나와 고생을 몹시 하며 살고 계셨다. 나는 목포에 김복심 큰 누님도 계셨으나 작은 누님이 더 편하니까 자주 들려 신세를 지고했었다. 어렵게 사시면서도 우리의 결혼 후에도 아내를 많이 도와주시고 즐겁게 해 주셨다. 

 목표 제일교회 권사님으로 믿음의 생활을 하셨다. 광주 큰 딸 집에서 사시다가 발바닥에 이상이 생겨 많은 고생을 하시다가 노년에 목포에 있는 둘째 딸 근처로 가셔서 가까운 요양원에서 계시다가 2009년 10월 15일 천국으로 가셨다. 자녀들은 믿음으로 복을 받고 살고 있다. 참으로 고생도 많이 하시고 인정도 많으시고 성품이 본받을 만한 분이셨다. 하나님께서 자녀 손들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사이비 교단 전도관 1958년 8월 21일

 청년 몇 사람이 모여 교회 화단과 뜰을 정리하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때 크게 유행했던 사이비 집단 전도관 전도사가 부락 청년 한 사람과 함께 와서 은희철 전도사님에게 면담을 요청하였다. 광주 호신을 졸업하시고 처음 목회지로 오신 은전도사님과 교리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 고성이 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두 번째로 우리 교회를 찾아와 논쟁을 한 것이다. 고성이 나오기 시작하여 수습하기가 힘들어 고평리 정인옥 당시 집사를 가서 모셔 왔다. 집사님은 들어 오시자마자 어떤 놈들이 떠드느냐 하며 호통을 치자 슬슬 가 버렸다. 분명 이단과는 교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논쟁해서는 안되고 가차 없이 상종을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은 전도사님은 호남신학교를 졸업하시고 이순영목사님 소개로 첫 목회지로 우리 교회에 오셨고 성격이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강한 분이셨다.

 

결혼을 축하해 준 양가 분들 1958년 12월 10일

 1958년 2월 5일 무안군 (지금은 신안군) 안좌면 존포리 대리교회를 갔다. 성산리가 고향인 맹덕수 집사가 안좌 대리교회 지역에서 사업을 하고 있으면서 대리교회 성도를 소개한 것이다. 이렇게 되어 결혼식을 갖게 되었다. 대리교회 설립 후 처음 가진 결혼식이었다고 한다. 

 결혼식 후 퇴장할 때는 모든 하객들에게 감명스러운 시간으로 하나님이 심히 사랑스러워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처갓집의 첫 밤은 마을 청년들이 많이 모였다. 사촌처남 정옥인의 배려로 평소의 관습을 벗어나 신랑이 믿는 자라는 배려로 심한 노름은 없었고 노래만 돌려 부르고 주민들은 귀가했다. 집안은 기쁜 시간들이었고 복된 시간이었다.

 다음날 12월 11일에 안좌 안창 부두를 향해 출발하여 목포에 와서 해남으로 가는 배를 타고 신랑집에 도착하였다. 구름도 없고 너무도 평온한 좋은 날씨였다. 하나님이 축하해 주신 것 같았다.

 

성탄 축하와 새벽송 1958년 12월 25일 

 매년 성탄절이 되면 새벽송을 준비한다. 24일 저녁부터 잠을 자지 않고 여 집사님들이 준비하여 준 따근따끈한 떡국을 먹고, 25일 새벽 1시에 성가대와 학생들을 2개 조로 편성하여 연습하고 준비해놓은 대로 출발하면서 사택과 교회 뜰에서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함께 부르고 각기 계획된 대로 가면서 '고요한 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저 들밖에' 를 힘차게 화음을 내어 찬양하였다. 방 안에서는 박수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새벽 동이 틀 무렵 4시경이 되면 송가는 끝이 나고 대원들은 지친 몸으로 집에 가서 한숨 자고 나서 식사하고 교회에 나가 교회학교 예배에 참석해야 하였다. 힘들지만 이런 기쁨은 지방에서만 가지는 행복이다. 젊은이들이 믿음으로 가지는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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