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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퇴원, 임종

by 매운 레몬 2023.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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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사랑해 주시는 아내

 요양사들이 일주일에 1회씩 목욕을 시켜주니 위생관리는 잘해주었다. 나는 양치질도 시켜주고 세수도 시켜주었다. 혼자서는 스스로 못하기 때문이었다. 아침에는 화장품 크림을 발라주어 얼굴이 거칠어진 것을 막아보려고 하기도 하였다. 누워있는 아내에게 나는 늘 이렇게 위로의 말을 해준다. 하나님께서는 나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셔요, 왜냐하면 내게 건강을 주셔서 당신을 위해 간호하게 해주시기 때문이라고, 이렇게 늘 아내에게 말해 주었다. 알아듣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아무 반응이 없다. 조용히 듣기만 하고 있다. 괴로워 하거나 짜증 내지도 않았다. 내곁에서 당신이 얼굴에 화장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또다시 볼 수 있을까!하는 마음이 떠 오른다.

 도우시는 하나님꼐 감사할 뿐이다. 점점 식사가 어려워졌다. 기운이 없어지면 식사 대용인 흰색주사제 콤비 플렉스를 놓아주게 했다. 한봉지는 이, 삼일 씩 주사액이 투여된다. 간혹 영양수액도 투여하다가 음식을 전혀 못 먹을 때 만 흰 영양제를 투여했다. 그의 누워있는 모습은 너무도 평안 한것 같다. 어쨌든 내가 아내를 위해 수고를 다하게 하시니 감사할 뿐이다. 

  입원하는 동안 1월 달에는 눈이 몇 번 내리고 추위가 매우 심했다. 나는 '하나님, 이 추위를 지나게 해주세요' 2월과 3월에는 많은 비가 자주 내렸다. 역시 이 기간을 지나게 해 달라고 끊임 없이 기도드렸다. 해동기가 되는 부활절이 지난 후 까지 지달려 달라고 다시 기도를 드렸다.

 침대를 햇볕이 비치는 남쪽 창가로 이동하여 보호를 받으면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날이 갈수록 미음도 들지 못하고 몇 숟가락 넘기고는 음료수도 약도 넘기지를 못하게 되어 갔다. 달래어 보기도 하고 어떻게 던지 먹게 할려고 애써 보았지만 점점 불가능해져 갔다. 뇌세포가 소멸해 가니 이런 현상이 나온 것 같았다. 그리고 약이 넘어가지 않으니 가슴에 호수를 넣으라고 한다. 위장 가까이에 직접 약을 투입할 수 있는 호스를 설치해야 한다고 했으나 나는 인위적인 생명 연장은 거부하였다. 환자가 고통스럽게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이 연약한 나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 비도 그치고 따스한 봄날이 왔다. 내과 담당 원장은 자신들이 요구한 대로 하지 않으니 퇴원해야 한다고 또 말한다. 내가 생각하기엔 병원을 벗어나면 환자에게 불편과 고통을 줄가봐 병원에 있기를 원했지만 정 반대의 현실이었다. 추위도 비도 없는 포근한 봄에 생명의 수한을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이시고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구하는 자에게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참으로 감사와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다.

 

효드림 요양병원에서 퇴원 2018년 4월 12일

 내과 원장은 아침에 환자 회진하면서 병원에서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으니 퇴원하라고 한다. 오전 9시경에 말했다. 의사의 의견을 듣지 않으려면 더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역시 생각하기에 집으로 가면 환자에게 불편 할까 해서 퇴원 요청에 대해서 원장과 몇 마디 언쟁을 하고 퇴원을 서둘렀다. 

 목포 아들 석호에게 연락하고 회사 근무중인 딸 효실에게도 퇴원을 알렸다. 병원비 등 모든 것을 정산하고 요양병원 앰뷸런스를 부탁하니 응하여 주어서 집으로 와서 큰방 침대에 누워드렸다. 점심 후에 효실이가 오기에 거실이 더 안정적일 것 같아서 거실로 모시고 평안하게 했다. 물이나 죽이나 아무것도 들지 못했다. 

 병원에서 주사도 몸에서 받아주지 않아 더 쓸 수가 없었으니 퇴원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계획으로 의사의 입을 통해 진행시킨 일이라고 생각하며 집에 온 것을 너무 감사했다. 내 마음도 편안해지고 안도감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죽음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맞이하여야 한다고 말들을 한다. 신앙을 가진 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쁨으로 맞이하는 준비된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우리 하나님이 위로해 주시고 안도해 주심을 감사할 뿐이다.

 

정우단 권사의 임종 2018년 4월 14일

 4월 12일 집에 온 후 거실에 모시고 옆에서 효실이가 보고 있는데 엄마가 눈을 한번 뜨고 둘러보고 있었다고 했다. 효실이가 '엄마 우리 집에 왔어'라고 말해 주었다고 한다. 조용히 듣기만 하고 곡 눈을 감았다. 석호 내외도 집에 왔다가 회사 업무가 바빠서 조금 있다가 갔다. 오후에 영란이와 영순이, 지호와 유미, 모두에게 집으로 왔다고 연락을 마지고 밤을 보냈다.

 잠자리는 아내의 좌우에서 효실이와 내가 누워서 동무해 주었다. 여러 날 만에 아내 옆에 누워있지니 너무 평안하고 행복함을 느껴보기도 하였다.

 13일 금요일에 딸 영란이가 화성에서 오후 늦게 왔다. 영란이는 금년 2월 설 이후에 경기도 화성으로 가서 식당을 개업해서 분주한 상태였다. 영란이는 자신의 예측대로 유미에게도 연락하여 저녁에 안 오면 임종을 못 할 것 같다며 재촉하여 막내딸 유미도 밤중에 왔다. 거실에서 엄마와 함께 5명이 마지막 밤 시간을 보냈다.

 아내는 너무도 평안하게 누워있었다. 나는 평소에 아내의 임종시에 잠자듯이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여 왔다. 아내가 집에 오고 보니 마음대로 찬송하고 기도하고, 이렇게 편하고 좋은데 나는 지나친 염려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이뤄진 것이라고 알게 되었고, 감사하였다. 나의 잘못된 생각을 돌이키려고 병원 원장의 입을 움직여 집으로 가게 한 것이었다. 14일이 되어 나는 우리 교구 담당 전영복 부목사님에게 임종예배를 부탁했다.

 전영복 부목사님이 계속 함께해 주셨다. 너무 고마웠다. 14일 11시경에 우수명 담임 목사님이 오셔서 임종 예배를 드렸다. 딸 영순이와 아들 지호, 지호 처 그리고 석호와 석호 처가 차례로 급히 왔다. 오후 4시 11분경에 마지막으로 서울에 있는 여동생인 처제 정선례 권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무도 전화를 하지 않았는데 주의 영이 지시하신 것 같았다. 주위에 모인 가족 모두 눈물로 찬송을 부르고 있을 때 동생의 전화가 온 것이었다. 영란이가 귀에 대 주었다. 그 시간이 이 땅 위에서의 마지막 전화였다.

 하나님은 그의 영혼을 하늘이 열리며(영란이의 증언) 하늘로 옮겨 가셨다. 생명의 수한이 다하여 선조들이 가는 길로 가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온 위대함이었다. 인간의 고통과 질고를 다 벗어버리고 영광의 보좌로. 주님이 계신 곳으로 가셨다. 사랑하는 주님의 품 안에서 위로와 기쁨을 누릴 것으로 믿고 이별의 눈물의 찬송과 기도로 환송을 해드렸다. 주님 영광 받으옵소서. 아멘.

 우리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린장례식장의 민동성 장로에게 연락하여 많은 도움을 받았다. 고마웠다. 나는 장례가 끝나고 요양병원에 찾아가 하나님이 원장님의 입을 통해 도우시게 했으니 고맙다고 인사를 드리기도 하였다. 원장님 마음도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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