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67 성경고등학교, 권오균 목사, 음악의 재능, 선거장 동계 성경고등학교 1958년 1월 1일 (1개월) 나는 성경 지식이 너무 없었다. 배운 것이 없이 설교만 들어왔다. 1950년 5월 10일 이순영 목사로부터 입교 문답을 받고 교인으로 인정받았다. 1958년 1월 목포 노회에서 시행하는 계절 성경학교 모집이 있어서 처음으로 등록하여 1개월 동안 교육을 받았다. 매년 1개월씩 3년을 이수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친척이 없으면 갈수도 없었다. 나는 이번 1년째에 참석했다. 우리 교회에선 김중석과 정유균 3명이었다. 1,2,3년차. 전체 70명이 강의를 받았다. 수료 시 나는 2등 수상했다. 숙식은 생활이 매우 어려운 작은 누나 장덕순 누나 집에서 신세를 졌다. 생활이 어려운 중에도 나를 몹시 생각해 주셨다. 나는 그 어려움을 잊고 지냈다. 식량이라도 가지고 갔.. 2023. 3. 16. 정인수 선생님, 김수규 선생님, 농촌 정인수 교장 선생님 1954년 1월 고당리 출신으로 배재학교를 나오신 분으로 일찍이 미국 선교사들로부터 신학문을 받아들여 지역 계몽에 선두자가 되신 분 중 한 사람이시다. 고향에 오셔서 초등학교만 있는 이곳에 중학 과정을 위해서 영명학숙을 개설하여 학교를 세우고 곧 이어서 영명중학교로 정부 인가를 받아 젊은이들을 교육하는데 열정을 다 하셨다. 문내, 황산, 화원면에는 중학과정이 고당리에만 있게 되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입학하지 못한 소년들이 고당리 지역에 많이 있었다. 당시 중학교 교장이시고 고당교회 집사님이시던 정 교장은 보기에 너무 안타까워 이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1953년 1월부터 겨울방학 기간 동안을 이용하여 1개월간 특설 반을 개설하였다. 우리 고전리에서는 네 사.. 2023. 3. 16. 문내 국민학교, 하나님 문내 국민학교나는 1944년 4월에 나이 만 7세에 문내초교에 입학했다. 문내면 소재지 우수영에 학교가 하나가 있었다. 그러나 거리가 5km나 되어 이곳 고당리에 학교를 설립하여 지방민이 많은 혜택을 받게 된 것이다. 우리 조선을 속국으로 하기 위해서 일본어를 배우게 하였다. 어린 나이에 시키는 데로 따르며 배웠다. 우리는 그때의 현실은 잘 모르고 지냈다. 운동장에 방공호를 파서 폭격에 대비한 훈련을 한 기억이 난다. 사이렌이 윙- 울리면 방공호로 달려갔다. 산에 가서 송진을 채취하고 쇠 그릇, 놋그릇, 구리로 된 물건 등을 마을별로 수집하여 거두어 가져가고 교회 종을 내놓으라고 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선 항복하자 우리는 해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라의 독립을 알게 되었다. 많은.. 2023. 3. 16. 정우단 권사의 열심과 수고, 하나님께서 주신 자랑스러운 가정 정우단 1937년 7월 4일~2018년 4월 14일, 향년 81세 정우단은 부모님이 일본으로 이민하여 거주했다. 정부기와 김효심 사이에서 출생하여 1945sus 8dnjf 15일 해방이 되자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고, 고향 신안군 안좌면 읍동 큰댁에서 해방 후의 어려음을 겪으면서 지내다가 후에 존포리에 집을 지어 살게 되었다고 한다. 언니 1명, 오빠2명, 본인과 남동생 3명, 막내1명 8남매가 마음이 너그럽고 착실한 부모의 양육을 잘 받으며 성실하게 자랐다.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해방이 되어 귀국하여 안좌 읍동으로 온 후 귀국의 기쁨 후에 온 해방 후의 가난속에서 존포로 이사, 대리교회를 다니며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교회학교 교사와 성가대에 봉사하면서 성실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 2023. 3. 16. 이전 1 ··· 13 14 15 16 17 다음